이곳의 기후는 더웠다. 조간신문에서는 때 이른 더위라며 기온을 보도하는 데에 지면을 쏟고 왜 날씨가 이렇게 된 것인지 장수를 들여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에겐 공기가 더운 것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정확히는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있었다. 기후는 더웠지만 다리에 감기는 이불은 아직 차가웠다. 그것 때문인지 그 전날 멀쩡하였던 머리는 지금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 덜 깬 정신과 어슴푸레한 창 바깥이 이상하리만치 정적이 감도는 새벽을 따라 머릿속으로 넘어 들어왔다. 눈이 아직 어둠 속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저쪽 벽의 달력은 눈에 잘 들어왔다. 그는 생각했다. 오늘은 모월 모일 무슨 요일. 어딘가 익숙한 숫자였다. 일 년 동안 자신의 특별한 날은 잊어버릴지언정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 그런 느낌이 밀려왔다. 그저 서너 개의 숫자들은 그 순서를 통해서 의문을 증폭시켰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더라. 분명히 무슨 날이었는데.
그게 맞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자신의 것은 잊어도 그의 것은 절대 잊지 못할. 아마 앞으로 많은 날들이 더 스쳐 지나가고 기억할 만한 날이 더 생기더라도 달력을 보았을 때 잊어버리지 못할 숫자로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는 지금 한 살 늘어난 나이를 생각하면서 허무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 그 이후로 흘러가 버린 시간이 쌓인 것을 생각하면서 특유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그가 그리 친절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이렇게 잊지 못할 사람으로 서로에게 남게 된 것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인연의 마무리 때문이었다. 당신의 절망을 바라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은 끝내 돌아서 마지막에는 그의 충격 받은 얼굴을 보아야만 하였다.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온도가 올라왔다. 목이 아파왔다. 눈가가 따뜻해지면서 덩달아 그의 머릿속도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지금 그의 얼굴은 정말 다시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였지만 오늘 같은 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불을 부여잡았다. 아, 이것은 단순한 감기가 아닌 오늘의 날짜와 당신이 몰고 온 아픔이고 뜨거움이었다.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날 위로하지 말고 이해하지 말고 용서하지 말아. 끝내 그 때의 자신을 둘러싼 배경과 그 당시의 나약하고 위에 휘둘렸던 자신은 절대로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참기 힘든 것이었고 이젠 멀어진 얼굴이, 목소리가 자꾸만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내 앞에 있다면, 내가 당신 앞에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식상했던 묵은 호칭을 꺼내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오늘은 그가 태어난 지 몇 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자기야.”
제목: 못(MOT)-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그대는 그리 친절하진 않군요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요
난 오늘도 또 하루를 마치고 기도하죠
날 위로하지 않길
날 이해하지 않길
날 용서하지 않길
날 구원하지 않길
시간은 내게 아무런 표정 없이
오 내가 모두 틀렸다고 말해요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내 맘이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길 바래요
날 위로하지 않길
날 이해하지 않길
날 용서하지 않길
날 구원하지 않길
날 돌아보지 않길
더 아무 말도 않길
또 마주치지 않길
날 기억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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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과 세트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