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04 쁘망님과의 연성교환.
*티비 시리즈
난 더 이상 기다리지도 않는데
-못(MOT), 카페인
몇 년이 지나 돌아온 뉴욕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더 정신이 없고 오히려 지루하기까지 했다. 두 가지 다른 이미지는 상충되는 것이었지만 외국에서 오래 있다가 다시 돌아온 뉴요커의 입장에서는 양쪽의 단어가 모두 맞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거리에는 그가 처음 보는 단어들이 적힌 네온사인이 배로 늘었고 도로에 꼬리를 물고 5차선을 메운 노란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색의 차들은 변한 것이 없었다. 콘크리트 정글에 여름이 오면 온도계의 눈금을 기어올라가는 빨간 막대는 이제 뜀뛰기를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비가 오면 벽돌과 금속이 섞인 건물 외벽 사이로 물안개가 부유하고 물에 젖은 도로 바닥에 인공 조명이 번지는 것은 똑같았다, 그에게 뉴욕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냐면, 집은 한동안 호텔이 예정되어있기까지 했다. 한참이 지나 훨씬 높은 위치로 돌아온 그에게 본부의 반응이 떨떠름한 것은 인사장교의 친절한-그러니까 가식적인-태도와는 다르게 그의 머릿속에서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신경을 쓸 경황이 없었던 그는 호실의 문을 열고 불이 꺼지도록 서 있고 나서야 자신이 더블 베드가 있는 방을 예약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습관과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은 손에 쥐고 있는 캐리어 손잡이의 촉감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방을 벗어나 예약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에게 그럴 정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사실 많지 않았으므로 캐리어는 안에서 물건을 몇 개 뱉어내지 않고 얌전히 창가 구석으로 들어갔다. 문에서부터 일자로 된 통로와 세면대와 화장실, 그리고 샤워실을 문 하나로 구별하는 이상한 구조의 방에 익숙해지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동안 그가 느낀 것은 침대가 거의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아는 일반적인 구조의 호실과는 다른 점이 현대에 와서 이상해진 건축가들의 머릿속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되뇌면서 슬리퍼를 발에 끼우고 샤워가운까지도 무엇이든 두 개씩이 준비되어 있는 옷장을 밉상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어줄 만한 것은 키를 놓아두는 문가 선반에서 커피스틱 몇 개와 전기 포트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커피는 만드는 사람이 어지간히 요리를 못하지 않는 이상-사실 이것은 요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물을 끓이면 되는 일이었다.-커피의 맛은 그가 항상 신뢰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는 포트랑 인스턴트 커피 스틱, 그리고 머그를 들고 침대 옆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물을 붓고 전원을 켜면서 그는 점점 진해진 자신의 커피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날 이후로 누워서 눈을 감기만 하면 꿈을 꾸었고, 눈가가 젖은 채로 항상 깨어나게 했다. 마시던 대로 우유 거품을 서툴게 내려 카푸치노를 마셔 보았지만 카페인이 부족한지 수면 시간이 조금 준 것으로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우유거품을 없애고, 물의 양을 줄이고, 원두의 양을 늘려서 커피가 마침내 작은 컵에 든 검은 웅덩이가 되었을 때, 그는 카페인이 그의 심장을 때리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잠은 두 시간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지긋지긋하게도 떠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는 항상 누가 뒤통수를 후려친 듯 일어나던 ‘그 장면’은 피할 수 있었다. 회색빛 세상. 쓰러진 팀원 둘. 끊긴 통신. 휘날리던 염색이 빠져가던 머리. 세상에 다신 없을 동정.
날 그렇게 믿었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리고 처음 그 장면이 사라진 바로 그 날을 떠올렸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뒤따라온 말이 바로 그 목소리로 울려퍼졌고 그가 숨을 몰아쉰 채 눈을 꽉 감았을 때 물이 다 끓었다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카푸치노가 그리웠다. 우유거품에 시나몬 향이 올라오는 잔을 받쳐 든 그 손을 보며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스키퍼는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는 바로 그 지점의 감정이 눈가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아메리카노를 입에 댔다.
믿었던 내가 잘못이지.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어.
작업곡
Jason Mraz-A World With You
못-카페인
자우림-미안해 널 미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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