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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NY

[플랙맥] 야경

2020. 6. 15.

 야경을 좀 보실 필요가 있으세요, 던의 말은 그랬다. 맥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던을 보면서 답했었다.

 “실험실은 한 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랩은 높은 층에 있기 때문에 야근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열심히 보게 된다네.”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 말을 이후로 그는 한참 말이 없더니 다시 그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밤에 시간이 되실 때에, 그리고 그 시간을 제게 기꺼이 할애해 주실 마음이 생기셨을 때 제게 한 번만 알려주세요.” 

 그래서 맥은 그렇게 했다. 아직 그의 할 일 목록에는 AFIS 결과를 확인하고 총알의 파쇄된 모양을 맞추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린지와 대니가 각각 맡아서 해도 되었다. 물론 맥 테일러는 아무에게나 귀찮은 분석을 미루는 악덕 상사가 아니었다. 린지와 대니는 어느 한 쪽만 집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랩에서 데이트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두 사람도 야경을 구경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는 일을 각각 미뤄주고 바깥이 어두워졌을 때 정장 자켓을 챙겨서 일어섰다. 오늘은 독립 기념일의 전날이었지만 독립 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범죄자들은 자기가 옳다 맨해튼 곳곳에서 활개쳤고 그래서 랩은 쉴 수 없었다. 맥은 점심 때 달력의 날짜를 가만히 보다가 불꽃놀이가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쩐지 오늘만큼은 그것을 그의 사무실 통유리 너머로 구경하고 싶진 않았다. 던은 혹시 이 날을 벼르고 있으셨던 것은 아니느냐고 문자 메시지 너머로 농담을 했다.

 두 사람의 장소는 웃기게도 NYPD 지구대 청사의 옥상이었다. 그래, 던도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이제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 그의 남은 잡다한 서류처리를 넘길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맥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던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맥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카슨이 형사님 자기만 불꽃놀이 보러 가시는 거냐고 우는 소리를 냈다니까요, 진짜 그 덩치로 그러는 게 징그러워 보이는 건 아나 모르겠어요, 자네 아주 악덕 상사가 다 되었구만, 맥은 던의 뒤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렇게 덧붙였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저도 대니한테 들은 게 있는데-”

 “알겠네. 그 점에서 우린 아주 판박이지, 잘 했어.”

 넓은 옥상에는 재떨이나, 앉을 수 있는 긴 나무 의자를 제외하면 케이블 전선이 가끔 지나가고 있을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 던은 언제 사 온 건지 캔맥주를 그에게 하나 건넸다. 조금 있다 자정이 되면 아마 저쪽에서부터 빨갛고 파란 불꽃놀이가 펑펑 소리를 내며 시작할 것이었다. 던은 문자로 하던 이야기를 계속 했다. 맥은 그의 합리적인 의심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그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랩에서 보는 것만큼의 경치는 아니어도 근무 중에 보는 것보다는 공식적으로 퇴근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뉴욕의 밤이 훨씬 아름답지 않냐는 의견을 내었다. 맥은 잠시 생각하다 그에 동의했다. 불을 환하게 한 네온사인들, 지금도 각자의 할 일을 찾아 하면서 켜져 있는 여러 회사와 식당, 그리고 작업장의 실내 조명들, 저들과 같이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아직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켜고 기다리고 있을 집의 형광등이 다양한 위치에서 빛나면서 어둠과 함께 윤곽을 드러내는 뉴욕. 그 광경은 사실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다웠으며 사실 그 도시가 여전히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남들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일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더욱 특별했다. 열두 시가 어느새 되고 시내 중심부로부터 멀찍이 들리는 함성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면서 내는 소리와 함께 서로 다른 모양으로 꽃처럼 피어 터지는 불꽃은 잠시 두 사람이 대화를 잊고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맥은 그걸 한참 보다가 맥주를 입에 대면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내 사무실의 각도에서는 안 보였겠군.”

 던도 어느새 불꽃놀이에서 시선을 떼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미소는 덤이었다.

 “그냥 좋다고 하셔도 돼요.”

 맥은 픽 웃었다. 던은 자신이 오래도록 숨겨 놓았다가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러 돼지저금통을 깬 아이처럼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도 오래도록 때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맥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 자네랑 같이 있으니 더 좋군.

 

 

소재는 포말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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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ove is Blind

2/13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의 관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 구차한 이유를 탓하며 마음을 놓아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모든 일에는 자신의 행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50달러를 들여 뉴욕에서 제일 비싼 발렌타인데이 기념 초콜릿을 갑자기 사는, 뭐 그런 것들. 비가 오던 그 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그 날의 사건도 이상했고 던 플랙 자신도 이상했다.

 물론 그는 그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의 행동이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럴 만 하다고 사료될 수 있는 행동이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더 나아가 그 행동이 향하는 상대방도 그 마음을 알아차렸으면, 그리고 자신에게로 돌아서 주었으면. 하지만 오늘이 데이오프인 것처럼이나 명확한 것은 아무리 사연과 이야기를 갔다 붙인다 해도 초콜릿 박스는 그저 초콜릿 박스가 될 뿐이었다. 일과 이미 결혼한지 오래인 것 같은 그의 상대방에게는 더욱 더.

 이런저런 생각들이 아침부터 그의 머릿속을 부유했다. 살짝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그 사이로 이른 봄을 알리는 바람과 살짝 차가운 듯하지만 온기라는 것을 내재하고 있는 공기도 방 안을 간지럽혔다. 그는 어렸을 적 보던 만화에서처럼 햇살이 창문 바로 앞 서랍 위에 놓인, 아직 건드리지조차 못한 초콜릿 박스를 감싸는 것을 가만히 침대에 앉아 지켜보았다. 성화와 같은 데에서 성인의 머리 뒤에 동그랗게 노란 빛을 그리는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햇살은 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는 쉽사리 침대에서 나와 박스로 다가가지 못했다. 자꾸 볼수록 그 얼굴이 생각나고, 목소리가 생각나고, 웃음이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일어난다면 며칠 전에 보았던 피해자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초콜릿 한 박스를 다 먹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체로 발견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그의 상대가 정말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서 얼굴을, 목소리를, 웃음을 얻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여기까지 슬픔에 겨운 공상을 마치고 나서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렸다. 자꾸만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생각이란 게 도대체 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싫었다. 보지 않으면 생각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며 택한 결론이었다. 좋은 날씨에 데이오프를 내고서도 전화 한 통을 사적으로 할 수 없는 관계가 미웠고,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면서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만큼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당신이 과연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친구라는 말이 덮을 수 있는 감정 그 이상의 것이 당신에게 존재할까. 알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던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맥 테일러를 사랑한단 사실뿐이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그의 방 안에서 어떠한 흐름을 만들었다. 향기를 실은 분자들이-랩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움직이는 공기를 타고 왔다갔다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던은 그 속에서 그가 어제 왜 홀린 듯이 록펠러 센터 안으로 걸어들어갔는지에 대한 답을 또 한 번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가지의 불법적인 상술이 지나갔고, 그에 따른 벌금도 계산할 수 있었지만 지금 던은 그저 슬펐다. 무슨 짓을 해 놓은 것인지 이불을 덮어 써도 그 달콤한 향은 그의 코끝에서 가실 줄을 몰랐다. 상자를 볼 때와 같이 눈앞에는 또 한 사람이 그려진다. 얼굴, 목소리, 그리고 살풋 웃던 미소.

 던은 어제 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수 없다. 그저께도, 일주일 전도, 한 달 전도, 여섯 달 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이미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보다는 '어떻게'에 더 무게를 싣기로 한다.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는지. 내가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생각하면서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떤 생각들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는지. 방 안을 가득 메운 향기는 던이 눈을 질끈 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은 데이오프였고, 내일은 근무를 서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발렌타인데이기도 하다.




왜인지는 모르지
그때에 널 얼마나 사랑했다 말할 순 없어
너를 떠올렸던 이유도

내 기억이 너를 거부해도
내 마음은 널 찾아다니고
아주 멀리 있다 해도 나 널 지킬거야

Misty Blue-Chocolate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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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를 강타했던 한파가 어느 정도 물러가고 뉴욕에는 조용한 날씨가 찾아왔다. 하늘은 흐렸지만, 사람들은 날씨가 아주 좋다고 이야기하며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비웃듯 오후에는 비가 왔다. 그것도 계속.

겨울이 지나갈 동안 얼어 있던 것은 땅이나 수도관만이 아니었다. 진전이라는 단어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차가운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새해가 되어 일을 할 때 수첩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과 계획들을 정리하기 위해 카드 다이어리를 사 맨 처음 있는 올해의 목표에 있는 가장 첫 칸에 올해는 꼭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단어들을 적어 보았지만 목표와 성취는 절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이 그냥 가버리고 그는 초조해졌다. 벌써 두 번째 달도 절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니 아무것도 못 한 채로 또다른 기념일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첫 날을 그냥 보내버린 후였다. 던 플랙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눈이 더이상 오지 않아 현장을 보존하기가 더 쉬워질 것에 안심하고 있을 동안 날짜는 벌써 14일을 향해 뜀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좋은 말솜씨를 발휘할 줄 알았다. 또 이런 기념일에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골라내는 데에도 능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것을 전해주는 데에도 능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이벤트나 선물이라 불리는 것들을 관계에 있어 가끔씩 챙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의 그런 능숙함을 보고 부러워할지 몰라도, 지금 그는 차라리 서툴렀으면 했다. 그러면 진전이 얼어 있는 것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그럭저럭 괜찮은 핑계를 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잘 못 하는 걸 어떡하느냐고. 던 플랙이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손가락을 하나 둘 접으면 어느새 날은 감쪽같이 14일을 가리키고 있을 터였다. 그는 손가락을 접는 것만큼 날이 쉽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겐 그것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추위가 사그라들어 조금의 활기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했던 뉴욕의 거리는 비가 내리자 조용해져 있었다. 평소의 어느 때보다 센트럴 파크는 빗방울 소리만을 크게 들려주었으며 이름과 명성을 찾아 도시에 도착한 사람들은 콘크리트 정글이 정확히 어떤 느낌을 표현한 말인지를 알아차리고 있을 터였다.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서에 잠시 들렀다가 큰 길로 걸어 나오며 그는 사랑을 파는 가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을 팝니다. 얼마의 달러,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 성 발렌티노의 축일 하루동안 그가 했듯이 사랑을 전달한다면 뉴욕에서는 그것을 판매하는 상품쯤으로 알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헛웃음을 짓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 형태가 궁금했고, 산 사랑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이어졌다. 그것은 발렌타인데이에도 치정범죄를 벌이는 놈들한테다 팔아주고 싶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또한 반쯤 형상화된 사랑을 파는 곳이 생각났다. 도시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겠지만, 그의 경로 안에 포함된 록펠러 센터 안에도 위치해 있었다. 이제 자신의 오늘치 할 일은 전화가 더 오지 않는다면 끝났으므로, 뉴욕에서의 사랑이 어떤 형태일지를 상상해보며 발을 내딛었다. 조용한 바깥과는 다르게 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찾아온 사람들과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이로 한 줄기 달콤한 향이 퍼져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길을 선택하다 한 줄기에서 시작하여 가장 진해진 향기에 걸음을 멈춰 섰다. 유명한 초콜릿 가게였다. 그의 예상대로 형상화된 사랑 또한 팔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손을 뻗으면 가득 들어올 것 같은 초콜릿들이 각자 다른 상자와 리본과 함께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시선을 끌어당겼다.

오늘만큼 빨갛고 분홍빛의 하트 상자가 사랑을 잘 나타낸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모두가 그것이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손님들에게 더 많은 초콜릿을 사도록 하려는 상술의 일종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문을 건 듯 올해의 목표 첫 번째에 놓인 단어들은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거리를 조용히 걷던 한 젊은이의 손에는 홀린 듯이 생긴 초콜릿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차라리 잊었으면 하고 간직하던 기억들 또한 같이 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던 플랙은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이제는 가장 차가운 얼음을 깨 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리는 조용한 거리를 고개숙여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진한 향기에 문득 걸음 멈춰섰지

투명한 유리너머로 한아름 잡힐듯한 초콜릿
나에게 주문걸기 살짝 속삭여
그래 날려버렸던 기억들


To. 판다멍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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