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 그림으로 설명된 자기력은 그에게 익숙했지만 이런 종류는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손가락도 서로 강하게 붙는 자석 사이에 끼어본 적이 있었고 극을 잘못 맞추어 서로 밀어내는 자석을 붙이느라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N극과 S극, N극과 N극 또는 S극과 S극 사이의 관계는 명확했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였다. 그것에 그의 감정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석이 평소에도 달라붙던 성가신 녀석을 완전히 붙어버리게 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폭발 후의 결과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자신이 그동안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는 최소한 이보다는 좋은 상황이 되었어야 한다고 속으로 말을 하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의 서글픈 생각들도 이미 발현된 극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자신과 대장 사이에선 척력이 작용한다는 사실과 리코와 대장 사이에선 인력이 작용한다는 사이었다. 어떻게 바꿀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때만큼 과학의 기본적인 성질, 전자들 사이의 성질에 서글퍼질 수가 없었다.
스키퍼가 코왈스키에게 ‘그놈의 실험’을 가지고 한바탕 화를 내고 난 후 그에게 떨어진 명령은 어서 평소 상태로 복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좋지 못한 일은 저녁 식사를 할 때 일어났다. 리코는 아까 전에도 대장과 완전히 붙을 뻔 하며 서로 끌어당겨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붙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유에는 스키퍼와 코왈스키의 반쯤 강제인 눈치가 있었다. 그러나 식사를 하다가 하필 소금 통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리코는 스키퍼의 요리가 조금 싱거운 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셰프의 기질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리코의 팔이 스키퍼 쪽으로 뻗어지는 순간 둘은 마치 마법처럼 서로 붙어버리고 말았다. 리코와 스키퍼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코왈스키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거의 울고 싶어졌다. 이 일이 생기고 나서 앞으로 다시는 실험하다 폭발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휘발성 물질은 실험할 때 쓰지도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을 하였던 자기 자신은 어느새 앞날 따위는 잊고 현실을 탓하고 있었다. 왜 하필 리코와 대장님이 서로 다른 극이었던 것일까. 프라이빗은 두 사람의 어깨를 각각 잡고 떼어내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막내였다. 코왈스키는 자신이 건드릴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스키퍼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커피로 진정시켜야 했다. 평소처럼 코왈스키가 컵을 건네려 팔을 뻗자 스키퍼-그리고 스키퍼와 붙은 리코-는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발은 자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왈스키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이 대장과 같은 s극의 성질을 띄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프라이빗이 세 사람 사이에서 원치 않던 심부름을 하러 뛰어다녀야 하였다. 하루 일과는 끝났지만 잘 시간에 다다라 커피를 새로 마신 스키퍼 덕분에 리코는 그날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스키퍼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리코의 생각에 속이 타는 코왈스키가 밤을 샌 덕분에 다음날 아침에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야기하는 코왈스키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코왈스키가 한 걸음 가까이 갈수록 스키퍼와 리코는 한 걸음 멀어졌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코왈스키의 실험실에 들어갔고, 또다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자석에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야만 하는 소리였다. 폭발음 뒤에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고 밖에서 지켜보던 프라이빗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코왈스키는 정말, 대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제대로 만든 발명품이 없었다.’ 리코는 저만치 날아갔고 이번엔 대장과 코왈스키가 붙어 있었다. 서로 붙은 팔을 떼려 하다가 전날 리코와 같은 상태로 코왈스키가 자신의 옆에 있게 된 것을 안 스키퍼의 분노 섞인 손을 멋쩍게 웃던 코왈스키는 피하지 못했고 그의 뺨에는 반나절 내내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력과 척력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네 남자를 진절머리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