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코왈스키의 목소리가 결국 올라갔다. 그는 속으로 아차, 했으나 말을 물리기엔 뻔히 보이는 심한 부상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스키퍼는 표정을 바꾸며 팔짱을 꼈다.
“나한테 왜 화를 내는 건가?”
“화 안 냈습니다.”
“그게 화낸 게 아니라고? 왜 소리를 지르는 건데?”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닙니다! 전 단지-”
“아니야. 자네 의도가 어땠었는지 간에 나한테는 그게 화를 내는 걸로 받아들여졌네. 나도 이제 더 있으면 목소리 올라갈 것 같으니까 그만해.”
“네? 아니, 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이 일도 저희 때문에 대장님께서 혼자 처리하겠다고 바꾸신 것에 대해서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이야기한 것뿐이잖습니까!”
“이것 봐, 또 목소리 올리지. 나한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네.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어. 난 갈 거니까-”
“대장님! 지금이라도 철회하면 되지 않-”
코왈스키의 말은 스키퍼의 손에서 막혔다. 이런 종류의 실랑이는 결국 무력으로 끝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코왈스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간 고개를 숙이며 다녀오시란 말만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스키퍼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자켓을 손에 든 채로 소리를 내며 걸어 나갔다. 현관문은 꽝 소리를 내며 닫혔다. 스키퍼는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 번씩 이렇게 만류와 독단이 부딪히는 싸움이 날 때마다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남곤 했다. 언제나 그의 부관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 데에 쓰이는 그의 손은 쓰일 때마다 그에게도 후회를 남겼다. 하지만 네 명분의 위험은 혼자서 감수하는 것이 나았다. 사실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지, 돌아올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가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상 이 문제는 회피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서 코왈스키는 굉장히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키퍼는 부하들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항상.
코왈스키는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던 것을 후회했다. 조금만 감정을 컨트롤했어도 이렇게 서로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 문제는 대장과 부관이라는 직책 사이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던 문제였다. 그것은 항상 대장만의 생각이었다. 네 명분의 부상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훨씬 나은 처사라는 것. 리코와 프라이빗은 둘째 치고 당장 코왈스키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나마 이번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 이유가 타당해 보이는 것처럼-언제까지나 타당해 보이는 것‘처럼’이었다-이야기가 끝났지만 그러지 않을 때에도 대장의 보호정신은 언제나 빛이 났다. 하지만 며칠 밤을 새고 돌아온 스키퍼는 항상 어딘가를 크게 다쳐 왔다. 뺨을 맞고서야 스키퍼는 보낼 수 있었던 코왈스키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왜 우리는, 왜 나는 저걸 막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할까. 그는 언제 다시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며 팔에 고개를 묻었다. 그 전에 그가 새야할 밤이 며칠이나 될 지도 예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코왈스키는 첫 번째 밤을 샜다.
그 후 나흘은 리코와의 신경전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리코는 이번에도 스키퍼가 없는 기지를 잘 버텨내지 못 했다. 어찌어찌 임무를 수행하고 오고, 본부의 일을 해 나가고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오면 대원들은 다 힘이 빠져 있었다. 계속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하던 리코의 엄지손톱은 조금만 더 있으면 피가 날 것처럼 보였다. 프라이빗은 붕대를 들고 왔지만 코왈스키는 고개를 저었다. 붕대는 리코에게 천조각밖에 더 되지 못하였다. 대장의 부재는 항상 예상만 해 오던 그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만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결국 그 마지막 밤에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코왈스키는 또 목소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발 그만 좀 해! 네가 그런다고 대장님이 지금 바로 오실 것 같아? 이것도 순간적인 폭발이었다. 리코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를 잡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리코는 코왈스키에게 어떤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항상 이럴 때만 그는 리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옳은 소리만 하곤 했었다. 두 사람이 험악해지면서 프라이빗은 어쩔 줄 몰라하였다. 결국 리코와 프라이빗이 지쳐 소파에서 잠들고 나서 코왈스키는 커피를 마셨다. 철제 컵은 오늘도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컵을 닦았다. 오늘 밤엔 오실 수 있을까.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오늘도 잠을 자지 않으면 내일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였다. 결국 카페인은 그를 포기하였다. 코왈스키는 핸드폰을 쥐고 소파 옆의 의자에 주저앉듯 앉았다. 스키퍼한텐 머리까지 딱 들어가는 등받이가 그에게는 머리 하나만큼의 허공을 남겼다. 기지는 탁상의 램프를 제외하면 어두웠다. 오늘만큼은 돌아오셔야 할 대장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았다. 코왈스키는 눈을 감았다. 언제쯤 이 기다림이 끝날 수 있을까. 내일은 본부에 가서 작전파일을 보아야겠다. 오늘도 언제쯤 정상적인 대화를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는 독단을 고집하는 스키퍼가 미워졌다. 하지만 그가 미워질수록 걱정도 커졌다. 이 감정은 또 언제쯤 폭발할까. 기다리는 것은 늘 힘들고 지쳤다. 그리고 때맞춰 울린 전화벨은 그 폭발의 도화선 역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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