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킨을 자주 발랐다. 넷이 같이 쓰는 샤워룸 한 쪽 선반에는 늘 로션과 크림이 놓여 있었고 그 사이, 뒤쪽에는 투명한 하늘색을 가진 스킨이 놓여 있었다. 젖은 머리를 털고 나오면서 그는 거울을 가져다 놓고 스킨을 바르곤 했었다. 향기가 코끝에 얹혔다. 창가의 디퓨저가 눈에 들어왔다. 수국이 막대를 타고 앉혀 있었다. 하늘색, 차갑지만 상쾌한 향기. 창가는 눈이 섞인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바뀌었다. 회색, 옅은 하늘색, 차갑고 아무 향이 없지만 코끝에 내려앉은 물기어린 공기. 물방울이 떨어졌다. 유리를 물들여야 할 물빛은 수국을 지나갔다. 파란색이었다. 물에 젖은 부분은 더 영롱한 하늘색으로 보였다. 그 때 그가 쓰던 스킨처럼. 향이 다시 한 번 퍼졌다. 물기에 젖은 향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내에서만 맡던 스킨 냄새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바깥 날씨처럼 눈이 섞인 비가 오던 날 드라이브 아닌 드라이브가 있었다. 창문을 열지 못하고 오랜만에 탄 차라 난방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머물러 있었다. 그가 지도를 펼쳐들고 몸을 옆으로 굽혔을 때 목덜미 쪽에서 향기가 났다. 차가웠지만 상쾌했던 향기였다. 어디선가 들었다. 그에게서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목덜미는 그 사람의 체취가 가장 강하게 나는 곳이라고. 하늘색이 떠올랐다. 그에게 스킨이냐고 물어보자 맞다고 대답했다. 차가웠던 차 속의 밀폐된 공기를 타고 그 향기는 그에게서 진하게, 하지만 연하게 풍겨왔었다. 그리고 회색빛이었던 차 속에서 마주친 그의 눈은 스킨을 타고 떠오른 것과 비슷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와 눈동자의 색이 달라진 것이 아닌데 그날따라 그 눈동자의 파란색은 눈에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비 묻은 거리를 달렸던 그 차 속에서, 차분한 숨소리가 들려 왔고 상쾌한 스킨의 향기가 났으며 파란 눈의 색깔이 얼굴을 넘어서 보였다. 그날의 드라이브는 처음으로 자신이 코왈스키를 오감으로 가까이에서 느껴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는 이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옆에 있을 때는 코왈스키로, 얼굴이 없고 옆에 없을 때는 부관으로, 아예 멀어졌을 때에는 파란 눈, 차갑지만 상쾌한 향기로. 그날 느꼈던 향기는 어느새 그가 쓰던 스킨이 아닌 그의 체취로 기억되었으며 눈 색깔과 연관지어 그는 그런 색깔들이 잘 어울리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았어. 결국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감각이군. 눈으로 본 것들, 코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귀로 들려오던 것들. 혀에 익숙했던 것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느꼈던 것들.
창문을 닫았다. 상쾌함이 남아있는 것을 빼면 그날 드라이브에서 느꼈던 차 속의 공기와 비슷하였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던 코왈스키의 눈을 기억해 낸다. 눈과 눈이 마주쳤고 곧 감겼다. 입 속으로 차가운 향이 들어왔었다. 펼쳐졌던 지도는 앞유리를 가린 상태였다. 눈앞이 파랗게 물들어왔다. 그는 나를 어떤 색깔로, 어떤 향기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나에게 무슨 존재였을까. 왜 눈으로 보았던 색깔은 눈에 남았지만 매일 보았던 형상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수국 향기가 다시 퍼졌다. 파랗게 물든 눈앞으로 그의 눈이 보이는 듯 했다. 언젠가 얼굴이 완전히 기억났으면 했다. 그때까지 그는 색깔로, 향기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키워드: 스킨, 목덜미, 드라이브
파란수국: 냉정, 바람둥이, 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