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기후는 서늘했다. 조간신문은 봄 날씨가 다 되었다며 연일 벌어지는 일교차와 올라가는 최고 기온을 보도하기 바빴지만 그의 손과 얼굴이 마주한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잠에서 깨 내쉬는 숨결에도 찬 기운이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방 안에 햇살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의 눈이 한 장 남은 달력에 가 멈춘다. 이 달이 지나가면 이제 뜯길 종이는 창문을 따라 들어온 공기와 함께 살랑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날짜를 세어보려 일주일 치 숫자를 돌아보다가 시선이 멈춘 오늘의 숫자는 그에게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이 다른 달에는 그저 숫자일 뿐인데도 이 달 이 날이 되어서 특별한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자신이 챙길 만 한 날짜들이 지나갔다. 국가적 기념일, 군에서 챙기는 기념일, 추모하는 날, 생일들. 특별히 걸리는 단어가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단어에서 그의 눈에 날이 섰다. 오늘은 생일이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일. 그리고 챙기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난 날. 날짜가 익숙했던 탓은 생일의 장본인이 꼭 챙겨달라며 콧소리를 올려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머릿속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머릿속에 거부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도 그의 생일을 챙겨주고 있다면 그것은 필히 이 몇 년 사이의 기억이 지워진 것이리라. 그만큼 그는 생일의 장본인에 대해 차가웠고 서늘했다. 서로 친절하고 따뜻한 사이였지만 오늘은 자신이 받았던 그 친절함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경멸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음이 쓰린 참이었다. 매년 이 날에는 서로 할 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주 눈을 맞추었고 자주 껴안았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근사하고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괜찮지 않았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상대의 비웃음을 가장한 미소가 지나가는 듯 했다. 스키퍼는 달력을 찢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모월 모일, 평범한 다른 하루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오늘이 되어서이든 아니든 절망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자신은 절망하지 않는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어떠한 기념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To. 구누님
제목: 못(Mot)-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축하한단 말을 해야겠군요
내가 받았던 친절한 그 경멸들은
오늘 더없이 내겐 어울려요 그렇죠
나를 비웃어요
나를 마음껏
나를 비웃어요
나를
no i'm not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만
나를 비웃어요
나를 마음껏
나를 비웃어요
나를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조금씩 매일 조금씩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
no i'm not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만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기념일도 되진 않을 겁니다
'마펭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왈스킵 장미 (0) | 2017.05.14 |
---|---|
한스스킵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0) | 2017.04.22 |
코왈스킵 정복 (0) | 2017.02.13 |
코왈스킵 터치 (0) | 2017.02.11 |
코왈스킵 Hydrangea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