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ne,
don't pick up the phone. You know he's calling 'cause he's drunk and alone.
스키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순서대로 일을 풀어나가고 그 사이에 꼬인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되짚어 그 상황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일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거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해결책이었다. 특히 자신이 두 사람의 부딪히는 감정의 원인이 되는 때에는. 그는 이렇게 해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더 이상 마음이 상한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이 없도록 풀리리라 믿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런 수많은 복잡한 상황을 겪은 사람이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일이 이번에는 잘 풀리기를 원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기지 바깥에서 보내는 밤은 스키퍼가 임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함께 느끼게 하였다. 스릴. 비밀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말들이 길게 수식어구를 이뤄 주는 말에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었다. 스키퍼는 그걸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에서 스릴은 어느새 목적의 위치를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특히 대원이 셋 있는데, 그 중 두 명이 모르게 다른 한 명과 밤을 보내는 상황이라면 더. 물론 그것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어쩌다가 눈길이 맞아 큭큭거리고 웃으면서 들어간, 아주 우연히도 코왈스키가 예약을 잡아 놓은 스위트룸은 굉장히 근사했다.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뉴욕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중간중간 달린 커튼은 방의 정경이 더욱 분위기 있다고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촛불 모양의 등마다 아래에 달린 유리구슬에 빛을 반사하여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벽지와 카펫과 잘 어울리는 색깔의 가구들도 이곳이 왜 높은 평가를 받는 호텔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스위트룸의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욕실에는 성인 남성도 두 사람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 욕조가 상아빛 대리석과 검은색의 타일 사이로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 자네 요즘 지갑 형편이 괜찮은가 봐? 장난스럽게 말을 던지는 대장에 부관은 시익 웃는다. 장미향 입욕제도 풀어놓았습니다. 가시죠. 코왈스키는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만큼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대장은 그의 예상대로 욕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장소를 고를 때 그 선택지를 빼지 않고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역시 좋은 선택임에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뭐라 할 것도 없이 따뜻한 물에 장미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코왈스키는 물온도를 조절하고 수건을 잡기 편한 선반에 올려놓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이 피어올라 세면대 두 개의 위에 달린 거울에 김이 서려 뿌옇게 변했을 즈음 부관의 손길은 점점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스키퍼는 오늘따라 더 길고 뼈대가 도드라져 보이는 손에 침을 한 번 삼켰다. 코왈스키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눈을 맞춘다.
“다른 부분도 마사지가 필요할까요?”
“요새 많이 대담해졌어?”
스키퍼 또한 코왈스키의 눈을 맞추며 씨익 웃는다. 가슴을 뛰게 하고 더 나아가 유혹적이라고 항상 느끼게 되는 미소였다. 따뜻한 물에서 퍼지는 향기로운 장미꽃의 향에 내쉬는 나른한 숨과 더해져서 코왈스키가 보기에 스키퍼는 지금 이런 손짓에 만족할 만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 자신도 만족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어느새 두 입술이 겹쳐지고, 어른거리는 김 사이로 거리를 둔 채 보이던 인영은 한 사람처럼 겹쳐진다. 조용한 말소리만 퍼지던 욕실에는 이제 타액이 섞이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듯이 흥분도 그에 비례해서 위로 높은 경사를 그리고 있었다. 과학자의 머릿속에서는 좀더 그럴듯한 비유를 찾고 있었다. 마치 락테이스가 유당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듯이, 그의 타액이 대장의 흥분 역시 분해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코왈스키가 누군지 알고,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일렬의 단어들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중요한 건 지금 그런 것을 따지기에 쓰일 이성은 감성에 자리를 내 준지 오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키퍼한테도 똑같이 적용되어서, 그의 머릿속에서도 또다른 생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림보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기분이군. 숨과 숨 사이로 섞여드는 목소리는 서로의 손에 들어가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떤 전화가 그 상황을 가로지를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2. Two,
don't let him in. You have to keep him out of the gate.
나이젤은 생각을 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모든 일처리가 깔끔하고 관계에 있어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그답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상황을 좋게 만들어 줄 만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줄곧 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던 문제는 본부가 갑자기 반쯤 폭파되어서 천막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운다던가, 신분을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차라리 해결하기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거리. 그것은 시간과 함께 모두가 극복해 내려고 갖은 노력을 해 온 분야였다. 세월이 흘러 나라와 나라 사이와 같은 물리적인 거리를 인간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된 건 기념할 만한 경사였다. 그는 아직도 경비행기가 주된 이동 수단이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제트 엔진은 과장을 반쯤 더하자면 요원들에게 있어 가장 기념비적인 발명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유롭게 거리를 초월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체감하는 것은 언제나 실제 거리보다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또 대서양이라는 바다 하나는 그저 그런 거리에 불과하지 않았다. 항상.
그는 속이 줄곧 좋지 않았다. 거른 식사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어떤 전화가 필요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날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서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그 말도 따라오지 않았다-전화를 피한 것이 어느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날들이 지난 후였다. 그래서 생각을 하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존재하는 거리를 넘어서서 기척을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딱히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문제가 터졌을 때 그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임무보다는 그 해결책을 적용하는 종류의 임무에 더 익숙했다. 또한 조카에게 전해들은 바의 상황은 더 생각을 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바다 건너 미국 뉴욕의, 아마도 맨해튼 도심일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는 확실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까지의 오차를 줄일 수는 없어도, 결정적으로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까지 동시에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을 보면 나이젤의 머릿속에서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결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맞이하게 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적인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 싫어졌다. 그에게 필요한 건 중간에 끼어든 통신사의 목소리가 아닌 전화선을 넘어 들리는 살아 있는 목소리였다. 나이젤은 생각을 정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해결책은 단 하나였고, 그걸 적용하는 것이 그에게 익숙해져 있던 방식이었다. 어떤 상황을 돌아갈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겠지. 그의 손가락이 전화를 거머쥔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을 누르고, 오늘따라 한 개의 신호음이 1분 이상 가는 것처럼 들리는 송화음의 기나긴 시간을 기다린다. 스키퍼, 오늘은 제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3. Three,
don't be his friend. You know you're gonna wake up in his bed in morning.
코왈스키는 생각을 더 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그의 대장에게 부관이라는 호칭으로 다가가고,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면서 겪어 본 여러 일들은 때로는 과한 생각이 기회를 놓치게 하고 해결하기 힘든 일을 불러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몇몇 종류의 일에서는 자신이 하던대로 상황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후에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대장의 방식대로 그냥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필요한 때였다.
상황을 가로지른 건 어떤 전화였다. 화면에 뜬 이름을 동시에 보자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지나갔다. 더 이상 피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다른 생각도 지나갔다. 스키퍼는 이번에는 도대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에 대해 벌써 머리가 아파졌다. 코왈스키는 기지에 남아 있는 막내가 분명히 자신과 대장만 외출한 데에 대하여 내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는 수건을 건넨다. 스키퍼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손을 닦았다. 그리고 전화를 들었다.
“네, 나이젤······.”
너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대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건너편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나이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드문드문 끊기는 약간 젖어 있는 듯한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 있을지에 대해 한 수많은 예측들 중 가장 불확실성이 높았던 예측에 대한 신뢰성을 높였다. 조카의 살짝 아쉬운 듯한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장님께서 코왈스키만, 그러니까 대장님의 부관이에요! 아시죠? 아무튼 코왈스키만 데리고 외출 중이세요.
“들리십니까? 나이젤?”
“그래, 들리네. 내 전화가 어딘가 고장이 났나 보군. 뭘 하고 있었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스키퍼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대답을 하기를 망설이자 코왈스키는 오늘만큼은 생각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두 번째로 결심했다.
“제가 받겠습니다. 이리 주시죠, 대장님.”
대장님. 그 너머로 가까워진 목소리는 스키퍼가 전화를 넘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이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식는다.
“안녕하십니까.”
“잊고 있었군. 자네가 상관의 곁을 끈질기게 지킨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네만, 나는 스키퍼에게 할 말이 있는 거지, 자네에게 할 말은 없네. 나처럼 그 또한 자네의 상관이라는 것을 내가 다시 알려줘야 하겠나?”
“저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수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대장님께선 이미 제게 전화를 넘기셨고, 그 행동에 제가 복종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자면 연인을 두고 온 영국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자네의 말은 살 1파운드를 정확하게 도려낼 수 있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군.”
확실한 건, 코왈스키는 그나 스키퍼와는 다른 종류의 임무를 자주 경험하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이젤은 큰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잠깐 들은 자신의 이름은 대서양의 폭을 조금 줄인 것 같이 느끼게 해 주었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다른 목소리는 폭을 줄인다는 것은 깊이를 깊게 만든다는 것을 또다시 일깨워 준 기분이었다. 그것은 한계였고, 넘어갈 방법은 지금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제대로 든다.
“스키퍼, 만났으면 좋겠네.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겠나?”
코왈스키는 물론 그 한숨을 정확하게 들었다. 코왈스키가 전화를 귀에 딱 붙이고 있다고 해도, 그 너머로 들리는 다정하면서도 아픈 목소리를 스키퍼가 듣지 못할 수는 없었다. 나이젤은 분명히 목소리를 크게 냈음이 분명했다. 스키퍼는 나이젤이 평소에도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머리가 아파졌다. 이것은 그냥 복잡한 상황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그는 물론 오랜 시간동안 한 목욕이 혈압을 낮춘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과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전화를 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코왈스키는 쉽게 나이젤의 뜻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스키퍼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꼬인 사람들의 마음을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바람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스키퍼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코왈스키에게 전화를 달라고 하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화를 넘겼다. 스키퍼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 그것을 내려놓았다. 코왈스키는 그의 눈을 바로 바라보더니 화가 섞인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 나이젤이 저희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 거죠? 아니, 정확히는 대장님과?”
“그건, 코왈스키,”
“전화를 피하신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것보다는, 대장님?”
나이젤은 그 다음날 조카가 전화를 하기 전까지 스키퍼가 아침을 기지가 아닌 병원에서 맞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프라이빗은 그의 대장과 나이젤의 어떠한 관계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이젤은 생각을 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그의 스키퍼가 아니라는 것.
If you're under him, you are getting over him.
~스키퍼의 아침드라마~ 5000원으로 한 달 뒤 출시예정! 기대해주세요!
DUA LIPA-New Rules에서 가사 인용했습니다.
원본 썰 써주신 구누님과 다멍님께 감사를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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