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왈스키는 눈을 떴다. 자신은 두 바퀴 반 정도 바닥을 구른 것 같은 자세로 먼지를 묻힌 채 앉아 있었다. 시선 끝에 있는 것 중 그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덜 낡은 본부의 천장 타일뿐이었다. 그는 작전부 사무실이 쭉 늘어서 있는 복도의 천장 타일 교체에 집행부가 승인을 내린 마지막 날이 언제였나를 생각해 본다. 손가락이 접히기 시작했고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앞으로는 인화성 물질을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16번째 한 다음, 그는 누가 볼세라 걸어가던 척 일어섰다. 긴 복도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문들은 몇 년 전에 인원 목록에서 지워진 이름 몇 개를 생각나게 하였다.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그대로였지만, 그 시간은 몇 년 전의 시각과 같은 시각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시간대를 맞추려 자켓 속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이제 알아차린 가장 큰 문제는, 시간 이동 기기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낯선 시간대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 중 한 문에서 멈춰 섰다. 그에게는 익숙하고, 다른 문들과는 다른 형태의 손잡이가 달린 문이었다. 잠깐 동안 사용법을 다시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은 자신이 쓰는 사무실의 문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문을 열면 아마, 큰 책상이랑 사무용 의자가 있고, 서류가 엄청 너저분하게 책상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었다. 그 난장판을 본다면 청소를 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험한 말이 먼저 나올 테지만, 자신은 그 안에서도 필요한 서류들을 제때 찾아낼 수 있으니 치우는 일은 없었다. 아니, 치울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옆으로 나와 있는 손잡이를 내리지 않고 그대로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문이 열리고, 그는 그가 기억하던 과거의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이곳에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자신과 바뀌어 미래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전자이길 간절히 바랐다.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대장과 만난다면 돌아갔을 때 두 배, 아니 네 배로 화가 난 그의 얼굴을 보게 될 지도 몰랐다. 그것만은 정말 싫었다.
어느 정도쯤으로 이동했는지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져 본다. 건드릴수록 점점 책상 밑으로 날아다니는 종이는 많아졌고 안 그래도 너저분한 책상은 더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은 종이들 사이에는 팩스로 받은 것이 없어 날짜나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글씨에 잉크가 번진 자국을 보니 만년필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쓴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만년필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까지 시간은 돌아갔다. 그가 이동한 지점을 알 수 있을 만한 서류를 찾기 위해 종이뭉치가 바닥에 네 번째로 떨어졌을 때 쯤, 그는 저 밑에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통지서를 보았다. 과거의 자신은 그것을 받아 놓고도 발견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듯 했다. 물론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파쇄기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그랬다면 아직도 이 사무실을 쓰고 있을 터였다.
서류에는 이동, 이름을 익히 들어온 상관,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코왈스키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이렇게나 옛날로 왔단 말이야? Attempt #1은 완전히 실패로군. 지금 시점의 코왈스키 ‘준위’는 코왈스키 ‘중위’의 대장이 될 사람과 말을 섞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름만 알고 있었으며 그가 상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시점까지 와버린 코왈스키는 문제가 복잡해졌음을 느꼈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생각했을 때 딱 한 가지뿐이었다. 이 시점의 어딘가에 떨어진 시간 이동 기기를 찾아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온통 혼란이 빚어지기 전에. 물론 그런 광범위하고 불확실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꽤 넓어야 했고, 독단적으로 일을 벌여도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큰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본부의 신뢰가 있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이방인인 자신이 무턱대고 부탁을 했을 때 들어줄 만한 사람이어야 했다. 지금 코왈스키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런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그는 통지서를 다시 집어들고 전화번호를 읽는다. 그리고는 책상에 놓인 전화를 들고 수화기 너머로 그가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린다.
2.
“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뭐라고?”
“코왈스키 중-”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 시간대의 신분을 따라야 하나, 원래의 시간대의 위치를 따라야 하나?
“응?”
“아, 작전부의 코왈스키 중위입니다.”
“중위라고?”
“네.”
“그래? 작전부에 있는 중위 중에 그런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코왈스키는 한숨을 쉬었다. 속주머니의 지갑을 꺼내서 사진이 그대로 있나 확인을 해 보았다. 다행인 것은 분명히 지금 이 시간대보다 미래임을 보여주는 네 명이 같이 찍은 사진이 카드 뒤편에 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 여행자가 과거를 바꾸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지만,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 시간여행은 여러 시간들 중 한 순간만으로 이동할 때만 가능하므로 그는 그가 아는 지식을 믿기로 하였다.
“신분을 사칭하는 수상한 자가 있다고 전화를 걸기 전에 제대로 말하게. 한 번은 봐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미래에서 온 코왈스키 중위입니다.”
스키퍼는 눈을 깜빡였다. 뭐?
“말이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군.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저는 미래에 당신의 부관이 된 사람입니다. 저한테 있는 사진을 보시면 알 겁니다.”
스키퍼는 오랜 시간동안 지갑 속에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진을 받아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진 속의 자신은 ‘대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된 상태였고, 얼굴에 시간이 더 묻어났으며, 옆에는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부관을 대동하고 다니는 몇몇 상관과 같은 분위기였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사진 속의 얼굴과 그의 앞에 서 있는 얼굴을 번갈아 바라봐도, 같은 사람이란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명백한 사실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대략 짐작이 가는군. 그러니까, 자네가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돌렸는데, 그게 잘못 작동해서 이 시간대에 떨어진 거라고?”
“맞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고?”
“네.”
“근데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나? 기술적인 건 어려워서 잘 모르는데. 그리고 그런 건 과학기술부에 가서 이야기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나?”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그것도 미래에서 왔다고 하는데 연결점이 하나도 없으면 도움을 주겠습니까? 이 시간대에서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대, 아니 중위님뿐입니다.”
“내가 뭘 해주면 되나?”
“이 시간대의 어딘가에 제가 만든 시간 이동 장치가 있습니다. 여기로 올 때 제 자켓 속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라졌어요. 남이 그걸 사용하기 전에 찾아야 합니다.”
“그럼 뉴욕이 아니라 다른 주, 아니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점이 가장 걱정되는 점입니다. 다행인 건, 그 장치를 쓰려면 지문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과 다른 사람의 접근으로 의심되면 제 핸드폰으로 그 주변의 사진을 전송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건드릴 때까지 기다려야겠지만요.”
“아예 새로 만드는 건 어떤가? 그게 더 편할 거 같은데.”
“자재가 아주 많이 필요하고 실험실도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저한테 있는 신용카드를 이 시간대에서도 쓸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빌려주신다면 새로 만들겠습니다.”
“빨리 찾아 낼 방법이나 생각해 보지. 앉게. 종이랑 펜이 필요하면 주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코왈스키는 늘 하던 대로 스키퍼의 앞에서 종이에 간단한 그림을 그려가며 경우의 수를 이야기했다. 첫째, 가장 운이 좋은 경우로써 이 본부 안에 장치가 있는 것. 그런 경우 행정적인 절차를 살짝 비틀어서 바로 가지고 돌아가면 된다. 둘째, 어느 정도 다행인 경우로 뉴욕 시 안 어딘가에 장치가 있는 경우. 바쁜 도시인만큼 신호가 빨리 올 가능성이 높고, 스키퍼의 재량으로 위치 추적기와 함께 하루 정도를 소비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셋째, 가장 최악의 경우로 뉴욕 시 밖 어딘가에 떨어진 경우.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모든 경우 혹시 모르니 이 시간대의 코왈스키와 마주치지 않아야 하며, 코왈스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엮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 스키퍼는 차근차근히 설명해 나가는 미래의 부관이 될 사람을 보았다. 빠른 상황판단력과 분석적인 안목을 가졌고 나이에 비해 일을 잘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미래에 자신이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스키퍼는 문득, 미래의 자신은 코왈스키라는 사람한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도와주는 답례로 한 가지를 해 주었으면 좋겠군.”
“너무 무리한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죠.”
“미래의 나에 대해 알려주게. 괜찮으면 미래의 자네랑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인생의 스포일러가 될 텐데 괜찮으세요?”
“별 건 없고, 그냥 궁금해서.”
“알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상황으로 가정해 보고 탐색 작업을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자네가 그 장치의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서 나한테 주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겠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어.”
“문제요?”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할 일이 아주 많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할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물어보는 것만으로는 빠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은데, 자네가 돌아다니기에는 위험이 크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나?”
“확실히 그게 문제긴 하네요. 음······. 그러면 현재의 제 사진을 한 장 구해주세요. 비교해 보고 크게 다르지 않으면 사람들은 어차피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정도의 차이만 알아차릴 겁니다. 그러면서 저도 찾아보도록 하죠. 혼선이 빚어지면 뒤를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스키퍼는 나갔다. 코왈스키는 의자에 앉아서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찾지 못한다면?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한다면? 자신의 시간대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선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일단 스키퍼, 그러니까 그의 대장을 믿기로 하였다. 그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구누님 리퀘로 쓴 글입니다. 일단 여기까지ㅠㅠㅠㅠㅠㅠ넘 늦어서 정말 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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