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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스킵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2017. 4. 22.

이곳의 기후는 더웠다. 조간신문에서는 때 이른 더위라며 기온을 보도하는 데에 지면을 쏟고 왜 날씨가 이렇게 된 것인지 장수를 들여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에겐 공기가 더운 것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정확히는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있었다. 기후는 더웠지만 다리에 감기는 이불은 아직 차가웠다. 그것 때문인지 그 전날 멀쩡하였던 머리는 지금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 덜 깬 정신과 어슴푸레한 창 바깥이 이상하리만치 정적이 감도는 새벽을 따라 머릿속으로 넘어 들어왔다. 눈이 아직 어둠 속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저쪽 벽의 달력은 눈에 잘 들어왔다. 그는 생각했다. 오늘은 모월 모일 무슨 요일. 어딘가 익숙한 숫자였다. 일 년 동안 자신의 특별한 날은 잊어버릴지언정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 그런 느낌이 밀려왔다. 그저 서너 개의 숫자들은 그 순서를 통해서 의문을 증폭시켰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더라. 분명히 무슨 날이었는데.

 

그게 맞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자신의 것은 잊어도 그의 것은 절대 잊지 못할. 아마 앞으로 많은 날들이 더 스쳐 지나가고 기억할 만한 날이 더 생기더라도 달력을 보았을 때 잊어버리지 못할 숫자로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는 지금 한 살 늘어난 나이를 생각하면서 허무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 그 이후로 흘러가 버린 시간이 쌓인 것을 생각하면서 특유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그가 그리 친절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이렇게 잊지 못할 사람으로 서로에게 남게 된 것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인연의 마무리 때문이었다. 당신의 절망을 바라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은 끝내 돌아서 마지막에는 그의 충격 받은 얼굴을 보아야만 하였다.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온도가 올라왔다. 목이 아파왔다. 눈가가 따뜻해지면서 덩달아 그의 머릿속도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지금 그의 얼굴은 정말 다시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였지만 오늘 같은 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불을 부여잡았다. , 이것은 단순한 감기가 아닌 오늘의 날짜와 당신이 몰고 온 아픔이고 뜨거움이었다.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날 위로하지 말고 이해하지 말고 용서하지 말아. 끝내 그 때의 자신을 둘러싼 배경과 그 당시의 나약하고 위에 휘둘렸던 자신은 절대로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참기 힘든 것이었고 이젠 멀어진 얼굴이, 목소리가 자꾸만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내 앞에 있다면, 내가 당신 앞에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식상했던 묵은 호칭을 꺼내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오늘은 그가 태어난 지 몇 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자기야.”

 





제목: 못(MOT)-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그대는 그리 친절하진 않군요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요

 

난 오늘도 또 하루를 마치고 기도하죠

 

날 위로하지 않길

날 이해하지 않길

날 용서하지 않길

날 구원하지 않길

 

시간은 내게 아무런 표정 없이

오 내가 모두 틀렸다고 말해요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내 맘이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길 바래요

 

날 위로하지 않길

날 이해하지 않길

날 용서하지 않길

날 구원하지 않길

 

날 돌아보지 않길

더 아무 말도 않길

또 마주치지 않길

날 기억하지 않길

-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과 세트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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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스킵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2017. 3. 26.

이곳의 기후는 서늘했다. 조간신문은 봄 날씨가 다 되었다며 연일 벌어지는 일교차와 올라가는 최고 기온을 보도하기 바빴지만 그의 손과 얼굴이 마주한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잠에서 깨 내쉬는 숨결에도 찬 기운이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방 안에 햇살이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의 눈이 한 장 남은 달력에 가 멈춘다. 이 달이 지나가면 이제 뜯길 종이는 창문을 따라 들어온 공기와 함께 살랑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날짜를 세어보려 일주일 치 숫자를 돌아보다가 시선이 멈춘 오늘의 숫자는 그에게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이 다른 달에는 그저 숫자일 뿐인데도 이 달 이 날이 되어서 특별한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자신이 챙길 만 한 날짜들이 지나갔다. 국가적 기념일, 군에서 챙기는 기념일, 추모하는 날, 생일들. 특별히 걸리는 단어가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단어에서 그의 눈에 날이 섰다. 오늘은 생일이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일. 그리고 챙기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난 날. 날짜가 익숙했던 탓은 생일의 장본인이 꼭 챙겨달라며 콧소리를 올려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머릿속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머릿속에 거부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도 그의 생일을 챙겨주고 있다면 그것은 필히 이 몇 년 사이의 기억이 지워진 것이리라. 그만큼 그는 생일의 장본인에 대해 차가웠고 서늘했다. 서로 친절하고 따뜻한 사이였지만 오늘은 자신이 받았던 그 친절함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경멸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음이 쓰린 참이었다. 매년 이 날에는 서로 할 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주 눈을 맞추었고 자주 껴안았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근사하고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괜찮지 않았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상대의 비웃음을 가장한 미소가 지나가는 듯 했다. 스키퍼는 달력을 찢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모월 모일, 평범한 다른 하루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오늘이 되어서이든 아니든 절망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자신은 절망하지 않는다.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어떠한 기념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To. 구누님



제목: 못(Mot)-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축하한단 말을 해야겠군요


내가 받았던 친절한 그 경멸들은

오늘 더없이 내겐 어울려요 그렇죠


나를 비웃어요

나를 마음껏

나를 비웃어요

나를 


no i'm not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만



나를 비웃어요

나를 마음껏

나를 비웃어요

나를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조금씩 매일 조금씩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


no i'm not alright at all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no i'm not alright at all 

매일 부서져 가겠지만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기념일도 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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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왈스킵 정복

2017. 2. 13.

 거울 앞의 스키퍼는 눈이 뾰족했다. 이미 깔끔해 보이는 깃을 자꾸만 매만졌다. 와이셔츠 한 장이랑 뻣뻣하게 풀을 먹인 자켓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 그는 옷장에서 거의 입지 않던 옷을 꺼내고 나서부터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매일 수트를 입지만 그와 비슷한 정복은 틀에 매여있기를 싫어하는 스키퍼에게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사실 기지에서 넥타이까지 매번 하고 계신 분이 할 생각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키퍼가 그런 옷을 입게 한 것은 본부의 행사였다. 군의 높으신 분들도 참석하는 규모가 큰 행사라 정복을 입고 참여해야 하는 것이 규정이라는 코왈스키의 말을 듣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스키퍼는 가슴 언저리가 불편하다며 애꿎은 자켓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는지 보려 코왈스키가 방으로 들어왔다. 다 입으셨네요. 근데 불편해. 돌아서 주세요. 스키퍼는 코왈스키에게 옷매무새가 잘 보이도록 돌아섰다. 그의 눈이 커졌다. 물론 혼자서 옷을 잘 다듬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와이셔츠 한 장에 바지만 입고 있던 기지의 대장은 그가 처음 만났을 때의 당당하고 각 잡힌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옷이 인상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로 판명난 지 오래였지만 그는 그게 정확하다고 믿고 있진 않았다. 그런데 그의 대장은 자신이 믿지 않았던 가설도 사실로 판명나게 해 주었다. 코왈스키! 대장이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얼마의 시간동안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 모른다. 코왈스키는 고개를 흔들고는 옷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확하게 입었지만 모포를 다는 것을 깜빡하신 것을 보았다. 모포는요? 아, 그거···. 그는 우물쭈물하며 주위를 돌아보다 옷장 속 상자에서 꺼내지도 않은 모포를 상자째로 들고 왔다. 이걸 왜 빼먹으신-아닙니다. 상자를 연 코왈스키는 뒤쪽에 달린 바늘 핀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스키퍼는 눈을 피하고 있었다. 


 "제가 달아드릴게요."


그는 바늘을 빼서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시 한 쪽 뾰족한 끝을 옷 바깥으로 빼 냈다. 손으로 고정된 핀을 확인하고 자리를 잘 잡았다. 다 되었다고 말하려는 순간 코왈스키의 눈에는 눈을 꼭 감고 있는 스키퍼의 얼굴이 들어왔다. 손가락은 안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 끝이 달달 떨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아, 이건 좀 무리인데. 그의 이마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귓가에 목소리를 낮추어 단어를 꺼냈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입술은 그대로 그의 이마에 부딪혔다. 스키퍼는 눈을 떴다. 그의 정복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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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왈스킵 터치

2017. 2. 11.

To. 구누님




그림: 구누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문이 닫혔다. 코트 위에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 눈이 섞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바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다. 코와 입 주위로 하얀 김이 퍼져 나왔다. 이런 날씨에 장갑을 챙겨가지 못한 두 사람의 손은 실내에 있던 사람이 만지면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뗄 만큼 차가웠다. 문을 닫는 소리에 소파에 앉아있던 그들의 대장은 고개를 돌렸다. 왔나? 그 말을 들은 리코는 신발을 벗어던지듯이 하며 스키퍼에게로 달려갔다. , 진정하라고 리코.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 대댱, 손 시려! 그는 코트도 벗어던지고 그에게 대뜸 손을 내밀었다. 스키퍼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소파 옆자리를 내어 주었으나 리코가 걸터앉은 것은 그의 무릎이었다. 그 과정 또한 사전에 약속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얼굴을 대장의 가슴 가에 부비적거리며 볼살이 눌러 나올 만큼 얼굴을 깊게 파묻었다. 손은 이미 체온으로 따뜻해졌을 시간이 지났을 텐데도 계속 셔츠에 붙어 있었다. 스키퍼는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리코는 어느 정도 대장의 체온을 느끼고 나자 그와 눈을 맞추면서 입을 모았다. 뽀뽀를 할 때와 비슷한 그 입모양은 대장의 어깨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팔은 옆으로 뻗어갔다. 결국 손의 종착지는 셔츠 속이었다. 기지에 있을 때는 항상 단추를 몇 개씩 풀고 있어 앞섬이 풀어진 상태였던 셔츠는 손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손가락이 맨살에 닿자 살짝 움찔하며 스키퍼는 리코를 바라본다. 손 차가워. 리코는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따뜻해. 스키퍼는 팔을 밀어내던 손을 치우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코왈스키를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에 멈춰 서 있게 만들었다. 그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대장이 그에게 잘 다녀왔냐는 인사말 정도를 해 주면 어느 정도 따뜻해졌을 것이다. 사실, 그의 손은 실내에 들어온 지 좀 되었지만 아직도 빨갛게 얼어 있었다. 바깥에서 똑같이 총을 쐈지만 그는 펜을 들고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손으로 다음 지시사항을 받아 적고 완료 보고서를 작성해야하기도 했다. 아니, 손이 더 시렵고 덜 시렵고의 문제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로까지 생각이 번졌다. 애초에 왜 스키퍼 대장님은 리코한테 저렇게 관대하신 거지? 그는 신발을 벗고 손을 비비면서 방으로 향했다. 스키퍼는 그가 드디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코왈스키, 손이 빨갛잖아.”
바깥에서 서류를 써서요.”
장갑을 가져갔어야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앞에 앉았다. 장갑을 챙겨갔어야지? 정말요? 정말 제게 하실 말씀이 그거밖에 없으세요? 리코 손이 셔츠 속으로 들어갔는데요? 과거의 일들이 되살아난다. 항상 저녁 때가 되면 리코와 프라이빗 사이에 껴 있는 스키퍼가 있었다. 소파에 코왈스키 자신과 같이 앉을 때에는 너무 가깝다 싶으면 옆으로 옮겨 가는 그였다. 자신이 직접적인 터치를 안 하고 몸을 안 부딪히려고 하기도 하지만 암묵적으로 그의 대장이 막는 것도 있었다. 아니 그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종의 규칙처럼 작용되는 것이었다. 서로 간에 필요하지 않은 터치는 삼갈 것. 코왈스키와 스키퍼 사이에서만 성립된다. 항상 그게 불만이었지만 무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그는 다 큰 어른이 무릎에 앉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이상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도 차가운 손에 얼굴을 묻었다. , 대체 왜 나에게만······.


 저녁 식사가 끝나고 리코와 프라이빗은 일찍 잠을 청하러 각자 방으로 들어간 참이었다. 남은 서류를 작성하던 코왈스키의 방문이 열렸다. 스키퍼는 눈을 빼꼼 내밀고 그를 불렀다. 바쁘나? . 서러운 감정이 담긴 마음은 목소리를 퉁명스럽게 만들었다. 말투도 마찬가지였다. 스키퍼는 그 대답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인지 그 대답으로 인해 마음을 정한 것인지 그대로 들어와 코왈스키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개 좀 돌려봐.”

할 거 많습니다.”
돌려보라고.”
지금 이것만 끝내고-”
얼른!”


코왈스키는 살짝 톤이 올라간 그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몸을 돌렸다. 스키퍼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말을 시작했다.


아까 들어와서 말이야.”
.”
왜 그렇게 기분이 별로였나?”
?”
기분이 왜 그렇게 별로였냐고. 손 시려운데 현관에 계속 서있고. 자네 표정 관리 좀 해. 너무 못마땅한 걸 티내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러면 달려가서 그렇게 부비적거리고 있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손이 차가워서 그랬다잖아.”


제 손은요! 저는요! 걘 총만 쐈잖아요! 속에서 자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코왈스키는 침을 한 번 삼키는 것으로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 법을 오래 전에 배운 터였다.


그럼 무릎에 앉는 거랑 얼굴 비비는 건 그렇다고 치고 셔츠 속으로 손이 들어갔잖습니까!”
아직 애기잖아.”
애기면 다 그래도 됩니까? 아니 그리고 리코가 애기에요? 알 건 다 알텐데?”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나? 진정해.”


스키퍼는 그를 의아하게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봐, 리코랑 프라이빗은 아직 덜 컸다고. 몸만 다 큰 것처럼 보이지 속은 전혀 아니야. 아직 둘다 완전히 어른이 되려면 멀었어. 근데 자네는 다르잖아. 자네는 이미 어른이야. 홀로서기를 끝내고 걸어나왔다고. 더 이상 유년기에 발이 매여있지 않잖아. 생각해 봐, 나 아니면 누가 저 애들이 껴안고 비비는 것을 허락해 주겠나?”
“···그래도, 저도, 가끔,”
알아.”
아시는 분께서 그럼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뭘 했다고?”
며칠 전에 소파에 앉아계셔서 옆에 앉으니까 제게서 멀리 자리를 옮기셨잖아요!”
, 그건 신문을 보려고 했는데 자네 얼굴을 가려버릴까 봐 그랬던 거지. 설마 그거 때문에 계속 화가 나 있었던 건가?”


사실이었다. 그는 자리를 옆으로 피하고 얼마 안 있어 신문을 집어들었고 그가 옆으로 비켜선 거리는 정확하게 스키퍼의 팔이 코왈스키의 얼굴을 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코왈스키는 확실히 자신이 그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 요즘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놓쳤던 불편한 점도 찾았지만 작은 손이나 아담한 키의 실루엣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남모르게 미소를 지은 적도 많았다. 스키퍼는 코왈스키를 보면서 침대 옆 자리를 권했다. 그는 힘없이 일어나서 옆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여기 앉아 봐.”
?”
와서 앉아 봐.”


스키퍼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정확히 리코가 앉은 자리와 같은 무릎이었다-그에게 장난스레 말을 했다. 코왈스키는 놀랐지만 피로에 지친 머리는 평소처럼 그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 그건 정말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스키퍼의 무릎에 앉았다. 


자네가 더 가볍군.”
그렇겠죠. 다리 안 아프세요?”
그런 걸 먼저 걱정하는게 흠이라니까. 그래서 안 앉히는 거야. 그냥 좀 릴렉스하면 좋지 않나?”
목도 끌어안아도 되는 겁니까?”
, 오늘만이야.”


그는 팔로 스키퍼의 목을 감았다. 그의 체온이 옷깃 너머로 느껴졌다. 동맥의 규칙적인 맥박소리가 피부를 타고 전달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따뜻하네요. 자네가 차가운 거야. 그의 아직도 차가운 손가락은 스키퍼의 등을 터치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감촉이었다. 자꾸 이렇게 앉아 있는다면 며칠동안 몇백 장의 서류가 쌓여도 피곤하지는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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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왈스킵 Hydrangea

2017. 2. 11.

그는 스킨을 자주 발랐다. 넷이 같이 쓰는 샤워룸 한 쪽 선반에는 늘 로션과 크림이 놓여 있었고 그 사이, 뒤쪽에는 투명한 하늘색을 가진 스킨이 놓여 있었다. 젖은 머리를 털고 나오면서 그는 거울을 가져다 놓고 스킨을 바르곤 했었다. 향기가 코끝에 얹혔다. 창가의 디퓨저가 눈에 들어왔다. 수국이 막대를 타고 앉혀 있었다. 하늘색, 차갑지만 상쾌한 향기. 창가는 눈이 섞인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바뀌었다. 회색, 옅은 하늘색, 차갑고 아무 향이 없지만 코끝에 내려앉은 물기어린 공기. 물방울이 떨어졌다. 유리를 물들여야 할 물빛은 수국을 지나갔다. 파란색이었다. 물에 젖은 부분은 더 영롱한 하늘색으로 보였다. 그 때 그가 쓰던 스킨처럼. 향이 다시 한 번 퍼졌다. 물기에 젖은 향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내에서만 맡던 스킨 냄새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바깥 날씨처럼 눈이 섞인 비가 오던 날 드라이브 아닌 드라이브가 있었다. 창문을 열지 못하고 오랜만에 탄 차라 난방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머물러 있었다. 그가 지도를 펼쳐들고 몸을 옆으로 굽혔을 때 목덜미 쪽에서 향기가 났다. 차가웠지만 상쾌했던 향기였다. 어디선가 들었다. 그에게서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목덜미는 그 사람의 체취가 가장 강하게 나는 곳이라고. 하늘색이 떠올랐다. 그에게 스킨이냐고 물어보자 맞다고 대답했다. 차가웠던 차 속의 밀폐된 공기를 타고 그 향기는 그에게서 진하게, 하지만 연하게 풍겨왔었다. 그리고 회색빛이었던 차 속에서 마주친 그의 눈은 스킨을 타고 떠오른 것과 비슷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와 눈동자의 색이 달라진 것이 아닌데 그날따라 그 눈동자의 파란색은 눈에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비 묻은 거리를 달렸던 그 차 속에서, 차분한 숨소리가 들려 왔고 상쾌한 스킨의 향기가 났으며 파란 눈의 색깔이 얼굴을 넘어서 보였다. 그날의 드라이브는 처음으로 자신이 코왈스키를 오감으로 가까이에서 느껴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는 이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옆에 있을 때는 코왈스키로, 얼굴이 없고 옆에 없을 때는 부관으로, 아예 멀어졌을 때에는 파란 눈, 차갑지만 상쾌한 향기로. 그날 느꼈던 향기는 어느새 그가 쓰던 스킨이 아닌 그의 체취로 기억되었으며 눈 색깔과 연관지어 그는 그런 색깔들이 잘 어울리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았어. 결국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감각이군. 눈으로 본 것들, 코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귀로 들려오던 것들. 혀에 익숙했던 것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느꼈던 것들. 
창문을 닫았다. 상쾌함이 남아있는 것을 빼면 그날 드라이브에서 느꼈던 차 속의 공기와 비슷하였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던 코왈스키의 눈을 기억해 낸다. 눈과 눈이 마주쳤고 곧 감겼다. 입 속으로 차가운 향이 들어왔었다. 펼쳐졌던 지도는 앞유리를 가린 상태였다. 눈앞이 파랗게 물들어왔다. 그는 나를 어떤 색깔로, 어떤 향기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나에게 무슨 존재였을까. 왜 눈으로 보았던 색깔은 눈에 남았지만 매일 보았던 형상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수국 향기가 다시 퍼졌다. 파랗게 물든 눈앞으로 그의 눈이 보이는 듯 했다. 언젠가 얼굴이 완전히 기억났으면 했다. 그때까지 그는 색깔로, 향기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키워드: 스킨, 목덜미, 드라이브

파란수국: 냉정, 바람둥이, 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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